빌딩숲 코 앞에 야생이 뛰논다 [조선일보 2006-04-24 03:03] 빌딩숲 코 앞에 야생이 뛰논다
[조선일보 2006-04-24 03:03]
보호지역 지정된 한강하구 장항·성동습지
고라니·흰뺨검둥오리·개리·황조롱이…
[조선일보 남승우기자, 김용국기자]
“고라니다!” 21일 경기도 고양시 자유로 옆의 한강변 장항습지. 30m 가량 앞에 사슴처럼 생긴 동물이 보였다. 까맣고 둥근 코에 맑은 눈망울을 가진 고라니. 카메라가 ‘찰칵’ 소리를 내자, 녀석은 재빨리 갈대 속으로 사라졌다. 취재진은 이날 북한땅이 보이는 통일전망대 앞의 성동습지도 찾아갔다. 모두 ‘희귀종의 보고(寶庫)’로 불리는 곳들이다. 환경부는 지난 16일 한강하구 1835만평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3년째 한강습지의 생태를 모니터링해 온 한동욱(38) PGA습지생태연구소장이 동행했다.
이날 아침, 군(軍)의 허가를 얻어 일산 앞 한강변 철조망을 통과해 장항습지로 갔다. 버드나무 숲과 갈대밭. 봄 햇살에 반짝이는 한강물이 시원스레 흘렀다. 곳곳의 개펄은 푹신푹신 담요 같다. “고라니 발자국이네요.” ‘V’자 모양으로 팬 흔적을 가리키며 한 소장이 말했다. 작년 겨울에 먹이 주러 왔을 때는 50마리나 몰려온 적도 있다고 한다. 장항습지의 면적(2.7㎢)을 감안하면, 국내 최대의 밀집도다.
북쪽 이산포IC 방향으로 자갈밭을 달리다 보니, 손바닥만한 꼬마물떼새 한 마리가 총총히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저쪽엔 고장난 채 버려진 트럭과 굴착기, 폐타이어, 녹슨 쇠파이프가 어지럽게 널렸다. 한강 준설(浚渫)의 흔적이다. 그 옆을 목을 쭉 뺀 재두루미 세 마리가 우아한 자태로 날아가고, 황조롱이(천연기념물 323호)도 보였다. 큰기러기 5마리와 왜가리도 스쳐가고, 흰뺨검둥오리도 무리지어 날아다녔다.
갈대들은 칼로 자른 듯 툭툭 끊겨 있다. 고라니의 식사 흔적이란다. 정오 무렵. 갈대와 부들 사이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그러더니 ‘퍽!’ 소리와 함께 고라니 한 마리가 뛰쳐나와 사라졌다. 저쪽에선 세 마리가 떼지어 놀고 있다.
강물은 밀물 때를 맞자 역류하기 시작한다. 겹겹이 흙이 쌓인 개펄로 물이 슬금슬금 차오른다. 수컷 꼬마물떼새 두 마리가 암컷 한 마리를 사이에 두고 ‘뾰롱뾰롱’ 소리내며 사랑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장소를 바꿔 통일전망대 앞. 임진강 너머 북한 땅을 보며, 철책선 옆길을 따라 달렸다. 철책 너머 습지 곳곳에 7~8마리씩 무리지은 개리(천연기념물 325호)가 보였다. 한 소장은 “멸종위기종인데, 봄·가을 이동기에 국내에 오는 개리 가운데 90%가 여기를 거쳐 간다”고 했다. 그는 “한강 하구는 저어새·흰꼬리수리·검독수리 같은 멸종위기 1·2급 동식물이 22종이나 서식하는 생태계 보고(寶庫)”라며 “대도시 근처에 이런 ‘야생 동식물 천국’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존 가치가 충분하다”고 했다.
정부가 한강 하구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함에 따라, 앞으로는 골재 채취와 어로 행위, 건물 신·증축, 토지형질 변경이 모두 금지된다. 재난방지나 안보 목적의 개발도 환경부 승인을 얻어야 한다. 최근 통일부가 북측에 제안한 한강하구 공동이용 구상도 예외가 아니다.
(글=남승우기자 [ futurist.chosun.com])
(사진=김용국기자 young@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