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지 열한번째 동물 개…인간에게 헌신하는 충복의 상징 [세계일보 2006-01-01 00:45] 십이지 열한번째 동물 개…인간에게 헌신하는 충복의 상징
[세계일보 2006-01-01 00:45]
2006년 새해 병술년(丙戌年)은 개띠해이다.
십이지의 열한 번째 동물인 개(戌)는 시간으로는 오후 7시에서 9시, 방향으로는 서북서,
달(月)로는 음력 9월에 해당하는 방위신이자 시간신이다. 개는 이 방향과 이 시각에 오는 사기(邪氣)를 막는 동물신이다.
우리 주위에서 가장 흔히 접할 수 있고, 가장 친밀하고 밀접한 관계를 가진 동물이 개이다.
개는 야생동물 가운데 가장 먼저 가축으로 길러졌으며, 그 성질이 온순하고 영리하여 사람을 잘 따른다.
개는 후각과 청각이 예민하고 경계심이 강하다. 또 자기의 세력 범위 안에서는 대단한 용맹성을 보인다.
특히 주인에게 충성심이 강하고, 그 밖의 낯선 사람에게는 적대심·경계심을 갖는다.
개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늘 인간의 주위에서 존재해 왔다. 때로는 구박과 멸시와 버림을 받기도 하고 자신의 몸을 희생하기도 한다. 인간이 개를 버려도 개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
개는 인간의 일상생활 문화에서 주위를 구성하는 풍경처럼 존재한다. 우리 조상들은 옛날이야기나 속담, 신앙, 미술 등에서 개의 이러한 행태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 개는 인간과 오랜 세월 생활해 오는 동안 인간과 거의 동일시되어 왔다. 그래서 “개는 사흘만 가르면 주인을 알아본다”라는 속담이나, 자기 자식을 가리켜 “우리 강아지!”라고 부르는 애칭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헌신하는 충복(忠僕)의 상징이다. 특히 설화에 나타나는 의견(義犬)은 충성과 의리를 갖추고 희생도 마다 않는다. 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에서는 매년 오수의견문화제가 열린다.
몸을 던져 주인을 살린 오수개를 기리기 위한 축제다. 만취해 풀밭에서 잠든 주인이 불 난 줄도 모르고 계속 잠을 자자 몸을 던져 불을 끈 전설의 주인공이다. 그런가 하면 서당개, 맹견, 못된 개, 미운개, 저질 개, 똥개, 천덕꾸러기 개는 비천함의 상징으로 우리 속담이나 험구(욕)에 많이 나타난다. 동물 가운데 개만큼 우리 속담에 자주 등장하는 경우도 드물다.
한국 토종개 가운데는 단연 삽살개가 우세하다. “삽살개 있는 곳에 귀신도 얼씬 못한다”는 속담처럼 삽살개는 악귀를 쫓는 개이다. 삽(없앤다 또는 쫓는다) 살(귀신, 액운) 개라는 말 자체가 바로 귀신 쫓는 개라는 뜻이다. 귀신 쫓는 삽살개에 관한 여러 가지 재미있는 물증들을 설화나 민화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인을 잘 알아보는 영리한 삽살개는 온몸이 긴 털에 덮여 있으니 산중의 신선이나 도사가 연상되기도 하고, 저승사자를 막아 줬다. 왕이나 지체 높은 양반들의 너른 집 마당에는 어김없이 삽살개를 길렀다고 한다. 터의 크기에 비해 사는 사람이 적은 집, 땅 기운이 센 곳에서 살아 그 기운을 누를 필요성을 느꼈던 사람들은 거처 가까이 삽살개를 둠으로써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예로부터 개는 집지키기, 사냥, 맹인 안내, 호신 등의 역할뿐 아니라 잡귀와 요귀 등 재앙을 물리치고 집안의 행복을 지키는 능력이 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민간 전래의 믿음이 미술과 조우하여 표현된 것이 개그림에서 만날 수 있는 모습들이다.
개가 없을 때는 개그림만으로도 액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특히 흰개는 전염병, 병도깨비, 잡귀를 물리치는 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집안에 좋은 일이 있게 하고 재난을 경고하고 예방해 준다고 믿어왔다.
◇이암의 모견도
‘삼국유사’에 보면 백제의 멸망에 앞서 사비성의 개들이 왕궁을 향해 슬피 울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집에서 기르는 개가 슬피 울면 집안에 초상이 난다 하여 개를 팔아 버리는 습속이 있었다. 또 개가 이유 없이 땅을 파면 무덤을 파는 암시라 하여 개를 없애고, 집안이 무사하기를 천지신명에게 빌고 근신하면서 불행에 대비한다.
옛 그림에서도 개그림이 많이 나온다. 동양에서는 그림을 문자의 의미로 바꾸어 그리는 경우가 흔하다. 개그림을 보면 나무 아래에 있는 개 그림이 많다. 이암의 화조구자도(花鳥狗子圖)와 모견도(母犬圖), 김두량의 흑구도(黑狗圖) 등이 그 예인데, 나무(樹) 아래에 그려진 개는 바로 집을 잘 지켜 도둑막음을 상징한다.
개는 ‘戌’(개 술)이고, 나무는 ‘樹’(나무 수)이다. ‘戌’은 ‘戍’(지킬 수)와 글자 모양이 비슷하고 ‘守’(지킬 수)와 음이 같을 뿐만 아니라 ‘樹’와도 음이 같기 때문에 동일시된다. 즉 “戌戍樹守”로 도둑 맞지 않게 잘 지킨다는 뜻이 된다.
이와 같이 개그림을 그려 붙임으로써 도둑을 막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일종의 주술적 속신(俗信)은 시대를 거슬려 올라가 고구려 각저총(角抵塚)과 무용총, 안악 3호분 부엌 그림에 무덤을 잘 지키라는 뜻으로 개그림을 그려 놓았다.
불가에서는 개, 특히 개고기를 금기시한다. 눈이 셋 달린 개는 삼목대왕의 환생물이라는 불교설화, 후대에 내려오면서 형성된 개가 조상의 환생이라는 속신으로 인해 개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다. 또 사찰이 대개 산속에 있어 개고기를 먹고 절에 가면 냄새가 나서 호환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속신으로 더욱 먹지 않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유가에서는 개를 크게 금기시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예(禮)를 극도로 중시하는 향음주례(鄕飮酒禮)에서 개고기가 술안주로 나온다는 점에서 미루어 알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 천진기
중국·일본의 개 민담
개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신화와 민담, 역사 속에서 다양하게 등장한다.
중국 남부 광시성과 윈난성 지역의 야오족(瑤族)은 스스로를 개의 후손이라고 여기고 있다. 반호(盤瓠)라는 개가 그 주인공이다. ‘후한서’에 따르면 고신(高辛)씨는 오랑캐가 침입하자 이를 물리치는 사람에게 공주를 주겠다고 한다. 이에 왕의 애완견이었던 반호가 사라졌다가 적장의 머리를 물고 나타났다. 반호는 공주와 결혼해서 남쪽으로 사라졌고 이들이 야오족의 시조가 됐다는 내용이다. 먹지 않는 동식물이 없다는 중국이지만 개는 약간 다르다. 유교의 영향으로 개고기는 제상에 올릴 정도로 식용으로 인정받아왔으나, 북방 유목민족의 지배를 거치며 개를 아끼고 먹지 않는 문화가 유입됐다. 이후 20세기에 중일전쟁 때 중국군이 매복하면 개가 짖어서 일본군에 발각되는 일이 많았고, 이후 베이징 일대의 한족은 개고기를 먹지 않는 풍습이 생겼다.
중국어에서도 개가 들어간 ‘거우짜중(狗雜種)’ ‘거우둥시(狗東西)’는 욕으로 쓰인다. 그러나 개 짖는 소리를 표기하는 ‘旺(왕)’은 재물과 복을 기원하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개는 도쿄 시부야에 있는 하치코다. 자신의 주인이 죽은지도 모르고 늘 같은 자리에서 기다린 하치의 충성심을 기려 죽은 뒤 동상도 세우고 이름 뒤에 존경의 의미로 공(公)를 붙여 ‘하치코’라고 불린다. 하치코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일본에서는 다산과 순산을 기원하는 이누하리코(액막이 장식용 개 장난감) 풍습이 있다. 임신 축하 선물로 쓰이고, 임신부는 순산을 기대하며 이누하리코를 복대에 착용하고 분만 때도 몸 가까이에 둔다. 에도 시대 5대 쇼군인 도쿠가와 쓰나요시를 일명 ‘개 장군’이라고 부른다. 그는 개의 식용을 금지하고 개 사망신고를 의무화했다. 이를 어길 경우 할복이나 유배에 처할 정도였다니 그가 얼마나 개를 소중히 여겼는지 알 수 있다. 그 이유로는 그가 개띠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안두원 기자 flyhigh@segye.com
〈도움말:중국 김인희 강사(중앙대), 일본 이애숙 교수(방송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