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유머 - 감동] 새벽2시 광화문, ‘유모차맘’이 물대포 껐다 한겨레 2008.06.26
[한겨레] 30대 어머니 가로막고 "내 세금으로 왜 그러나"
비아냥·제지에도 끄떡 않자 34분만에 차 돌려
6월26일 새벽 1시31분, 기자는 서울 광화문 새문안교회 앞 도로 위에 있었다. 새문안교회 골목에서 전경들에게 밀린 촛불시위대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새벽 1시32분, 서대문 경찰청 방면에서 왕복 8차로를 가득히 메운 전경들이 방패를 앞세우고 몰려오기 시작했다. 전경들의 대열은 끝이 없어 보였다. 뒤로 살수차가 보였다.
▶8차선 꽉 메운 채 방패로 땅 쿵쿵 치며 위협행진
1시40분, 전경들은 새문안교회에서 광화문쪽으로 시위대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전경들은 방패를 어깨 높이까지 치켜올렸다 땅을 내리쳤다. 그때마다 땅이 울렸다. 선임의 선창에 따라 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기들만의 구호를 일제히 외쳤다. 여성들은 겁먹은 표정이었다. 제자리에 얼어붙어 울먹이는 젊은 여성이 보였다. 시위대들은 광화문쪽으로 밀려났다.
1시41분, 2대의 경찰 소속 살수차가 전경들 뒤에 바짝 붙어섰다. "깃발부터 잡아, 강하게 저항하는 놈부터 잡아." 마이크에서는 쉼없이 지령이 내렸다. 살수차는 물대포이자, 전경들의 대오를 지시하는 지휘부였다. 윙~하는 펌프엔진 소리가 들렸다. 살수가 시작됐다. 물대포였다. 시위대들은 물에 젖었다. 여름의 초입인 6월 끝자락의 밤이지만, 차가운 물에 젖으면 살이 떨린다. 곧 입술이 파래진다. 시위대들은 전경들의 위력과 물대포의 서슬에 아무런 저항도 못해보고 광화문으로 광화문으로 떠밀렸다.
1시48분, 먼저 살수를 시작했던 노란색 살수차 대신 옆에 대기하고 있던 회색 살수차가 물을 뿜기 시작했다. 물길이 두 배는 멀리 나가는 듯 했다. 한없이 쏘았다. 살수차의 물탱크에는 6500리터의 물이 들어간다. 7.5미터까지 쏠 수 있다.
▶경찰 인도로 끌어내려 하자 "내 아이에 손 대지 마!"
1시52분, 회색 살수차가 물대포를 멈췄다. 노란색 살수차와 임무교대를 하려는 듯 보였다. 그때였다. 한 30대 어머니가 유모차를 끌고 노란색 살수차 앞을 가로 막았다. 경찰들이 몰려와 인도로 끌어내려 했다. 어머니는 "유모차에 손대지 마, 내 아이에게 손대지마"라고 외쳤다. 서슬에 놀란 경찰들은 물러났다. 시민들은 "아기가 있다"며 유모차를 에워쌌다. 경찰들은 당황했다. 윙~하고 움직이던 노란색 살수차의 펌프엔진 소리가 멈췄다.
곧 한 무리의 전경들이 방패를 앞세우고 몰려 왔다. 방패로 땅을 치며 구호를 외쳤다. 시민들이 "애가 놀라잖아"라고 항의했다.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전경들은 상황을 파악하고 조금 뒤로 물러섰다.
순간 노란색 살수차가 뒤로 빠졌다. 회색 살수차가 이제 주된 역할을 할 모양인 듯 했다. 방금보다 더 강한 엔진음이 들렸다. 물대포 발사 준비 소리였다. 어머니는 곧바로 회색 살수차로 유모차를 끌기 시작했다. 전경들이 몸으로 막으려 했지만, 유모차를 가로막진 못했다.
▶유모차 밖으로 아이 두 발이 쑥, 아! 눈물이 핑~
1시55분, 어머니는 두번째 회색 살수차 앞에 섰다. 전경들은 멈칫 거리며 다시 대오를 갖췄다. 어머니가 하늘을 쳐다보다 손으로 눈을 가렸다. 짧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두 눈가는 젖어 있었다. 그 순간 그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두 아이의 아빠인 기자는 그냥 망연히 유모차 앞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2시01분, 전경들이 빠졌다. 회색 정복을 입은 순경들이 대신 유모차를 에워쌌다. 일부는 불량스런 표정으로 껌을 씹고 있었다. 유모차를 등지고 있던 순경 한명이 유모차 덮개를 슬쩍 들치려 했다. 껌 씹던 순경이었다. '안에 혹시 인형이라도 대신 넣고 가짜 시위하는 거 아냐?' 이런 표정이었다. 시민들이 "뭔 짓이냐"고 항의했다. 순경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다시 유모차를 등졌다.
사람들이 모인 광경을 보고 사진기자들이 몰렸다. 플래시가 터졌다. 어머니는 "제 얼굴은 찍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폴로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손으로 얼굴을 가리지는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유모차가 심하게 요동 쳤다. 그리고 유모차 밖으로 아이의 두 발이 쑥 삐져 나왔다. 온갖 굉음에 격한 소음과 쏟아지는 플래시, 아기는 얼마나 심한 공포와 불안에 불편했을까. 눈물이 핑 돌았다.
▶"저 평범한 엄마입니다, 근데 왜 저를 여기 서게 만듭니까"
2시10분, 여경들이 투입됐다. 뒤에서 "빨리 유모차 인도로 빼"라는 지시가 들렸다. 여경들은 "인도로 행진하시죠. 천천히 좌회전하세요"라고 유모차와 어머니를 에워쌌다. 어머니는 동요하지 않았다. "저는 직진할 겁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내가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도로 위에서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자유가 있습니다." 또박또박 말했다.
2시15분, 경찰 간부 한명이 상황을 보더니 "자, 인도로 가시죠. 인도로 모시도록"하고 지시했다. 여경들은 다시 길을 재촉했다. 어머니는 다시 외쳤다. "저는 저 살수차, 저 물대포가 가는 길로만 갈 겁니다. 왜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국민들에게 소화제 뿌리고, 방패로 위협하고, 물 뿌립니까. 내가 낸 세금으로 왜 그럽니까."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떨림은 없었다.
그때 옆의 한 중년 여경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아니, 자식을 이런 위험한 곳으로 내모는 엄마는 도대체 뭐야"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대답했다. "저 평범한 엄마입니다. 지금껏 가정 잘꾸리고 살아오던 엄마입니다. 근데 왜 저를 여기에 서게 만듭니까. 저는 오로지 직진만 할겁니다. 저 차(살수차)가 비키면 저도 비킵니다."
2시20분, 아까부터 껌을 씹던 순경이 유모차를 등지고 섰다. "어, 저 허리 아파요, 유모차로 밀지 마요"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시민이 "그럼 당신은 유모차에도 치이냐"라고 면박을 줬다. 순경은 다시 "그 잘난 놈의 아들 얼굴이나 한번 봅시다"라고 곁눈질했다. 어머니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2시23분, 살수차가 조금 뒤로 빠졌다. 경찰들이 다시 "인도로 행진하십시오"라고 어머니를 압박했다. 어머니는 외쳤다. "전 저 차가 가지 않으면 하루 종일 여기에서 서 있겠습니다."
▶"전 저 차가 가지 않으면 하루 종일 여기에서 서 있겠습니다"
2시26분, 경찰 간부가 다시 찾아왔다. "살수차 빼고, 병력 빼." 드디어 살수차의 엔진이 굉음을 냈다. 뒤로 한참을 후진한 차는 유턴을 한 뒤 서대문쪽으로 돌아갔다.
2시27분, 어머니는 천천히 서대문쪽으로 유모차를 밀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다시 유모차를 에워싸려 했다.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야, 유모차 건드리지마, 주변에도 가지마." 경찰들은 뒤로 빠졌다.
어머니는 살수차가 사라진 서대문쪽을 잠시 응시하다 다시 천천히 유모차를 끌었다. 유모차를 따라 갔다. 하지만 말을 걸 수는 없었다. 기자이기 이전에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묵묵히 유모차 뒤를 따랐다.
2008년 6월26일 새벽, 서대문쪽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던 물세례에 소스라치던 이들은 갑자기 물대포가 끊긴 이유를 잘 모를 것이다. 여기에 그 이유가 있다. 기자는 그것을 대신 전할 뿐이다. 온몸으로 2대의 살수차를 막아선 한 어머니가 있었다는 것을.
이태희 < 한겨레21 > 기자 herm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