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러바다소 (Steller's sea cow, 학명: Hydrodamalis gigas) - Wiki 스텔러바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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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바다소목
과: 듀공과
속: †스텔러바다소속(Hydrodamalis)
종: †스텔러바다소
현황: 절멸(1768)
[사진]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A%B7%B8%EB%A6%BC:Hydrodamalis_gigas.jpeg
스텔라바다소 (Steller's sea cow, 학명: Hydrodamalis gigas)는, 멸종한 해서(海棲) 포유류의 일종. 듀공목(目) 듀공과(科)에 속한다. 일찌기 북태평양의 베링 해(海)에 생식하고 있던 거대한 바다소였는데, 1768년경 멸종하였다. 이 동물은 한랭 적응형의 바다소 무리 중에서 최후까지 생존한 종(種)이었다.
형태와 생태
스텔러바다소는, 몸길이는 7m를 넘고(일설에는 최대 8.5m), 체중은 5~12t로, 고래를 제외한 포유동물(哺乳動物)로서는 최대였다. 거의 잠수하지 못하고, 둥글게 융기한 등의 상부를 마치 전복(轉覆)한 보트의 배 밑바닥처럼 물 밖에 내비친 상태로 바다를 감돌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섬 주변의 얕은 바다에 무리를 만들며 살고 있었다. 조수(潮水)를 타서 해안의 얕은 여울에 모여 다시마 등의 갈조류를 먹었다. 겨울이 되어 유빙(流氷)이 해안을 포위하면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지방이 없어져 여위었다. 이 때의 스텔러바다소는, 피부 아래의 뼈가 비쳐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얼음이 흘러 떠날 때까지 그들은 난바다에 있었고, 봄이 되고 얼음이 없어지면 다시 해조를 먹기 시작하지만, 초봄에 번식에 들어가 1년 이상의 임신 기간을 거쳐 새끼 1마리를 낳았다고 생각된다. 새끼들은 무리의 중앙에서 자랐고, 한 쌍의 정(情)은 매우 강했다고 슈텔러는 적고 있다.
스텔러바다소는 몸이 거대한 것 외에도, 난해성(暖海性)의 듀공이나 매너티와는 다른 특징을 몇 개 가지고 있었다. 이 바다소의 성체는 이(齒)가 거의 퇴화했으며, 그들은 주둥이로 바위에 붙은 다시마 등을 씹어 뜯어먹었다. 현존하는 난해성의 바다소류(類)와 같이, 스텔러바다소도 다시마를 입속에서 씹거나 갈아서 으깨는 것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슈텔러에 의하면, 몸안에는 매우 큰 장(腸)이 내장되고 있었다고 한다. 잘 씹어 부수어지지 않은 음식을 완전하게 소화하기 위해서 그렇게 큰 장이 필요했던 것일 것이다.
스텔러바다소의 대부분은 물에 잠긴 부분의 피부에 수많은 작은 갑각류가 기생하고 있었고, 해부한 장 안에는 선충(線蟲)이 기생하고 있었다고 한다.
스텔러바다소의 머리 부분은 몸에 비해 작고 머리가 짧아서, 몸과 경계는 별로 뚜렷하지 않았다. 목은 작고, 입의 주위에는 굵은 털이 나 있었다. 밖에서 본 귀는 콩알만한 크기였고 별로 눈에 띄지 않았지만, 내이(內耳)의 구조는 발달했기 때문에 소리는 잘 들을 수 있었다고 짐작된다. 목의 구조는 매우 유연하고, 별로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넓은 범위의 먹이를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꼬리는 크고 평평했다. 몸을 둘러싼 검고 튼튼한 피부는 두께가 2.5cm에 달해 마치 나무의 가죽 같았다. 피부 아래의 지방층은 10~20cm 이상이었다. 이것은 추위로부터 몸을 지키는 것과 동시에, 얼음이나 바위 때문에 몸에 생채기가 나는 것을 막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발견 당시의 스텔러바다소는 코만도르스키 제도 주변의 한정된 지역에서밖에 생식하지 않았지만, 10만년 전의 화석(化石)을 보면 이전에는 일본 연안으로부터 적어도 미국의 캘리포니아 근처까지 분포하고 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알류샨 열도 바깥에서 없어진 것은 기후의 변화 때문이지만, 12,000년~14,000년 전경에 이 지역에 인간이 정주하게 된 것도 부분적인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멸종
덴마크 출신의 탐험가 비투스 베링이 인솔한 러시아 제국(帝國)의 캄차카 탐험대는 1741년 11월에 폭풍우에 의해 조난되어, 캄차카 반도(半島)의 동쪽 500km에 있는 코만도르스키 제도(諸島)의 무인도(베링 섬)에 좌초했다. 베링을 포함한 승무원의 반 이상이 괴혈병, 굶주림과 추위로 사망했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보트를 만들어 다음해 8월에 섬을 탈출해 페트로파블로프스크캄차츠키로 귀환했는데, 그 중에는 독일인인 게오르크 빌헬름 슈텔러(George Wilhelm Steller)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귀환했을 때, 조난한 무인도(베링 섬)에서 발견된 거대한 바다소에 대해서 보고했다. 그 바다소는, 길이 7.5미터, 허리둘레가 6.2미터이며, 섬 주변에 2,000여 마리 정도가 생식한다고 추정되었다. 그 바다소 1마리로부터 3톤 남짓의 고기와 지방(脂肪)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고기는 송아지고기같은 맛을 갖고 있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조난 중의 슈텔러 일행에게 있어서 이 바다소들은 훌륭한 식료원이 되었다. 맛뿐만이 아니라 그 고기는 비교적 오래 저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고기는 그들이 섬을 탈출할 때에 매우 도움이 되었다. 가죽은 장화와 벨트, 보트를 물결로부터 지키는 커버로 이용되었고 젖은 직접 마신 것외에도 버터로도 가공되었다. 지방은 단 아몬드기름같은 맛이 났고, 램프의 빛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들이 생환할 수 있었던 것은 거기에 우연히 이 바다소가 있어 준 덕분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텔러바다소라고 이름 붙여진 이 바다짐승의 이야기는 곧바로 퍼져, 그 고기나 지방, 모피를 노린 캄차카의 모피 상인이나 사냥꾼들이 많이 코만도르스키 제도로 향해, 남획이 시작되었다.
10여년 후인 1751년, 슈텔러는 그의 관찰기에서 이 동물에 대해 몸의 특징이나 생태 등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이 바다소들은 동작이 둔하고, 인간에 대한 경계심도 없었다. 적절한 방어 방법도 없었고, 오로지 바닷속에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또 이들은 동료가 살해당하면, 마치 그것을 도우려는 듯이 몰려드는 습성이 있었다. 특히 암컷이 부상당하거나 살해당하면, 수컷 여러 마리가 모여와, 꽂힌 작살이나 얽혀 붙은 로프를 떼려고 했다. 그러한 습성도 사냥꾼에게 이용되었다.
1768년에 슈텔러의 옛 동료인 이반 포포프라고 하는 사람이 섬에 건너가, “아직 바다소가 2, 3마리 남아 있었으므로 죽였다.”라고 보고하고 있는데, 이것이 스텔러바다소의 마지막 기록이 되었다. 결국 그들은 발견 후 불과 27년 만에 자취를 감춘 것이 된다.
최근의 목격담
1768년 이후에도 스텔러바다소로 여겨지는 바다짐승의 포획이나 목격이 몇 번이나 보고되고 있다. 19세기 중반에도 목격담이 드물지 않았고, 최근에는 1962년에도 목격담이 있었다. 러시아의 포경선 선원이 아나디르 만(灣)에서 스텔러바다소를 닮은 6마리의 동물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1977년 캄차카의 어느 낚시꾼이 표류 중인 스텔러바다소의 특징과 유사한 동물과 접촉했다고 보고해 왔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신빙성이 낮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원본 주소 ‘http://ko.wikipedia.org/wiki/%EC%8A%A4%ED%85%94%EB%9F%AC%EB%B0%94%EB%8B%A4%EC%86%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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