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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의 겨울 고라니, 겨울이 싫다
이 글은 어린이를 위한 자연 생태 잡지인 "까치" 1993년 12월호(웅진출판사)에 실린 글입니다.

고라니,
겨울이 싫다

고라니는 사슴과에 속하는 조그마한 동물이다. 같은 사슴과인 노루보다도 연약하지만 강한 생명력으로 이미 사슴과 노루가 사라져 버린 땅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아 있다.

 


눈밭에 빠진 고라니


암 고라니의 얼굴. 생김새는 사슴이나 노루와 비슷하지만 몸집이 훨씬 작다.
 

까치 친구들, 고라니라는 동물을 아십니까? 아마도 모르는 친구가 많을 것입니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도 아니고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야생동물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영화나 동화책 또는 만화에 자주 나오는 동물도 아니지요. 짐작컨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친구들도 꽤 있을 것 같습니다.

노루보다 흔해

그럼 고라니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 볼까요?

고라니는 젖먹이동물로, 말하자면 사슴과 노루의 사촌격인 동물이지요. 고라니는 복노루 또는 복작노루라고 불리우기도 합니다. 이런 걸로 보아서도 고라니가 노루와 매우 비슷한 동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몸집을 보면 노루보다는 작아서 몸 전체 길이가 90센티미터쯤 되고, 어깨 높이는 50센티미터쯤 됩니다. 몸무게는 대략 9 ~ 11킬로그램 밖에 되지 않아서 아주 가벼운 편이며, 노루와는 달리 암수 모두 머리에 뿔이 없습니다. 털은 거친 편이며, 빛깔을 보면 위쪽은 황갈색, 아래쪽은 옅은 누런색 그리고 앞다리는 붉은 빛을 띱니다. 또 수컷의 경우 입에는 송곳니가 밖으로 드러나 있는 게 특징입니다.

보통 키 작은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숲에 사는 고라니는 노루나 사슴보다 흔한 편입니다. 노루가 많이 사는 한라산에는 고라니가 전혀 없지만 웬만큼 숲이 우거진 산이나 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비무장 지대에는 적지 않은 수가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사냥꾼들의 사냥감이 되고 있지요. 보통 한두 마리씩 함께 다니지만 가끔은 여러 마리가 무리를 이루어 다니기도 합니다. 새끼는 날이 따뜻한 5월에 5 ~ 7마리 정도 낳습니다.

잔인한 계절, 겨울

고라니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는 나무 뿌리나 나무의 어린 싹입니다. 그래서 이런 먹이가 많은 봄은 고라니가 가장 살기 좋은 계절이지요. 반대로 겨울이 되면 나뭇잎도 나무 열매도 없으므로 고라니로서는 먹고 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눈까지 내려 그나마 남아 있는 풀이나 나무 뿌리조차 찾을 수 없게 되면 하루하루 목숨을 이어가는 것조차 힘겨울 지경이 되고 맙니다.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큰눈이 내리면 굶어 죽는 고라니도 많아집니다. 1990년 겨울, 강원도 지방에 1미터가 넘는 큰눈이 내렸을 때에도 수많은 고라니가 굶어 죽었습니다. 이런 때면 많은 고라니들이 먹을 것을 찾아 사람이 사는 마을까지 내려옵니다. 그러다 사람에게 잡힌 고라니를 산간 지방에서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동물보호단체에서는 가끔씩 먹이를 찾지 못해 굶어 죽을 염려가 있는 야생 동물을 위해 먹이를 뿌려 주곤 합니다. 운 좋은 고라니는 그것을 찾아 먹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렇게 운 좋은 고라니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잔인한 계절인 겨울이 되면 고라니는 그럭저럭 목숨을 이어가면서 눈이 빠지도록 봄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겨울은 길기만 하고 그토록 기다리는 봄은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

 


먹을 것을 찾는 고라니들. 겨울에는 먹이가 없어 굶어 죽는 고라니도 생긴다.


등산객의 도움을 받는 고라니. 눈이 많이 내리는 산간 지방에서는 이렇게 눈구덩이에 빠져 꼼짝달싹 못하는 고라니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른 봄 물가에서 먹이를 찾고 있다.
춥고 긴 겨울을 이겨 낸 고라니만이
봄을 맞이할 수 있다.

● 고라니의 암수 비교 ●

고라니의 암수를 구분하기는 별로 어렵지 않다. 먼저 입가에 드러난 송곳니를 보면 알 수 있다. 수컷의 입가에는 2 ~ 3센티미터쯤 되는 송곳니가 밖으로 드러나 있는 반면에 암컷의 송곳니는 작고 밖으로 드러나 있지도 않다. 그리고 몸집으로도 구별할 수 있는데, 대개의 젖먹이동물이 그렇듯이 고라니도 암컷보다 수컷이 몸집이 더 크다.

암컷 수컷
암
컷
암
컷
수
컷
수
컷
암컷 수컷


봄이 되면 숨을 곳이 많아 좋습니다. 몸집이 작기 때문에 작은 덤불만 있어도 교묘하게 몸을 감출 수 있습니다.


물가를 한가롭게 거니는 고라니.



덤불에 숨어 주위를 살피고 있다. 봄이 되면 숲이 우거져 숨을 곳이 많아 좋다.
당당히 이겨내는 겨울

그래도 자연은 반드시 약속을 지킵니다. 차디 찬 바람과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치던 겨울도 때가 되면 물러가고 드디어 가슴 설레이는 봄은 오고야 맙니다. 얼었던 물이 녹아 흐르고 부드러워진 흙을 헤치고 풀이 돋아납니다. 나무엔 다시 물이 올라 새순이 돋아납니다. 모든 동물이 그러하듯 고라니에게도 봄은 생명의 기운을 가져다 주는 계절이지요. 어딜 가나 먹이가 있고 물이 넘쳐 흐르니까요. 겨우내 여위었던 몸도 이젠 하루가 다르게 살이 오르고 원기가 왕성해 집니다.

또 하나 고라니에게 기쁨이 되는 것은 숲이 우거져 적이 나타나도 재빨리 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낙엽이 지는 가을이나 눈이 쌓이는 겨울에는 숨을 곳도 없거니와 재빨리 달아나기도 힘이 들지요. 그러나 봄, 여름에는 다릅니다. 고라니는 별로 몸집이 크지 않으므로 키 작은 나무가 약간만 우거져 있어도 그곳에 교묘하게 숨을 수 있습니다. 숲이 없다 하더라도 눈이 쌓여 있지 않으므로 재빨리 달아날 수 있습니다.

고라니에게는 다시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기 전까지 해야 할 이들이 있습니다. 먼저 부지런히 먹이를 먹어 몸속에 영양분을 저장해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먹을 것이 변변찮은 가을과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으니까요. 또 날씨가 따뜻하고 먹을 것이 많은 봄과 여름에 새끼를 낳아 부지런히 길러야 합니다. 겨울이 올 때까지 새끼 스스로 살아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제대로 낳고 기른다 해도 겨울을 무사히 견디고 살아남는 새끼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고라니는 작고 연약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동물보다도 더 겨울을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동물과 식물이 그렇듯이 고라니 또한 겨울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봄을 맞이해야만 하는 게 고라니의 운명이지요. 자연은 그렇게 시련을 견뎌내고 꿋꿋이 살아남은 동물에게만 삶의 기쁨과 축복을 내린답니다. 호랑이도 늑대도 남아 있지 못한 이 땅에 고라니는 아직도 많은 수가 살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겨울의 추위와 눈보라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이겨 낸 탓이 아닐까요?

글/문명식 기자 사진/여동완(생태 사진가)


뒷다리로 가려운 곳을 긁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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