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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심 때문에 희귀동물 수난

붉은박쥐

이 글은 시사 주간지인 "뉴스메이커" 311호(1999. 2. 18/25. 설합본호, 경향신문사)에 실린 글입니다.


붉은박쥐
인간의 욕심 때문에 희귀동물 수난

썩 예쁘지도 않은 포유동물 한 종류가 국내 생물학계와 방송사 자연 다큐멘터리팀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일명 '황금박쥐'로 불리우는 붉은박쥐가 주인공이다.


▲ 카메라를 향해 날아오는 붉은 박쥐

붉은박쥐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동물 1호로 지정될 정도로 희귀한 박쥐. 강원도, 충남, 전남, 경남 등 전국에 걸쳐 극히 일부 지역에만 분포하며 지금까지 10여 개체 미만의 채집 기록이 있을 뿐이다. 동굴사진 작가로 20여 년 동안 동굴 사진을 찍어온 석동일씨조차 지난 77년 1개체를 발견했을 뿐 22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을 정도다.

이처럼 귀한 박쥐가 국내의 한 지역에서 무려 80여 마리씩이나 서식하는 것이 발견됐으니 국내 생물학계가 놀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희대의 발견'은 칭찬을 받기는커녕 환경보호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맹비난을 받는 등 발견자를 궁지에 몰아 넣고 말았다.

붉은박쥐를 발견한 주체는 한국생태계연구협회의 영상제작 부서. 이 팀은 지난 1월, EBS(교육방송)에 납품할 자연다큐멘터리 <동면>을 제작하던 중 동굴에 집단 서식 중인 붉은박쥐 떼를 발견했다. 이 후 희귀종인 붉은박쥐임을 확인한 협회와 EBS측은 기사거리가 된다고 판단, 보도자료를 발송했고 그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그러나 몇몇 신문에 박쥐의 서식처가 보도되면서 박쥐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 동굴 천정에 붙어 있는 붉은 박쥐


▲ 동굴 벽에 붙어 있는 붉은 박쥐

이후 국내 생물학계에서는 '난리'가 났다. 많은 학자들이 "조명 때문에 동면에서 깬 박쥐는 장소를 옮겨다니다 결국 동사하게 될 것"이라거나 "구체적인 지역이 보도를 통해 알려졌으니 그곳의 붉은박쥐는 밀렵꾼에 의해 전멸당할 것"이라며 <동면> 제작팀에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이와 함께 학자들 사이에서는 붉은 박쥐의 생태에 대한 논쟁이 불 붙었다. 붉은박쥐가 5개월 동안 계속해서 동면을 하기 때문에 조명을 받고 깨어난 박쥐들은 모두 죽게 된다는 것과 수시로 잠에서 깨어나기 때문에 생존에는 별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팽팽이 맞서게 된 것이다.

귀한 발견을 하고서도 '생태 파괴의 주범'으로 몰린 다큐멘터리 제작팀은 현재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담당 연출자인 김선숙 PD는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긴날개박쥐의 동면 상태를 발견하지 못해 여러 동굴을 헤매던 중 평소 잘 보지 못한 박쥐가 우연히 발견돼 촬영했을 뿐 붉은박쥐인 줄은 몰랐다"며 "그러나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수십 마리의 박쥐가 조명에 노출되거나 동면에서 깬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붉은박쥐의 발견이 결과적으로 그들의 생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같아 안타깝다"며 자료를 배포한 측이나 언론 등의 조심스럽지 못한 보도 태도에 불만을 터트렸다.

현재 생태 전문가들은 얼마 전 방송을 통해 얼굴을 내비친 붉은박쥐의 생존에 대해 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열목어와 금강초롱 등 희귀동식물이 방영된 후에는 그 지역의 개체들이 밀렵꾼들에 의해 '초토화'되는 예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이번 '붉은박쥐' 파동은 방송사의 한탕주의가 빚은 해프닝"이라며 다큐멘터리 제작자나 보도기관이 자연보전과 보도의 경계를 명확히 할 때만이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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