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미와 인간① | 이윤의 극대화가 최고의 목표 | |
| 이 글은 월간 과학잡지인 "과학동아"(동아일보사 발행) 1996년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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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재천(서울대 생물학과 교수 . 동물행동학)
필자는 '동물행동학' 분야의 젊은 권위자다.
1977년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하버드대에서 각각
생태학과 생물학 석사과정을 마친 후 1990년 하버드대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하버드대, 터프스대, 미시간대 등의 교수직을 거쳐 1994년부터 서울대에서
재직하고 있다. 현재 미시간대 동물학박물관 연구원, 국제학술지(Journal of
Insect Behavior) 편집위원으로 활발히 활동중이다.
개미 연구는 주로 하버드 대학원에 입학한 84년 이후 5년간, 중미 코스타리카에서
수행했다. 지도교수는 세계적으로 개미 연구의 권위자로 인정받는 명망가였다.
필자는 이외에도 딱정벌레, 벌, 박쥐 등의 생태에 대해 조예가 깊다.
개미에 얽힌 많은 얘기 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아마도 '개미와 베짱이'일 것이다. 무더운 여름내내 시원한 풀그늘에서 여기저기 흩어진 온갖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분 좋게 노래를 부르며 삶을 만끽하는 베짱이. 반면 뜨거운 한낮의 땡볕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울 채비를 위해 쉬지 않고 일하는 개미. 그렇듯 열심히 일만 하는 개미를 비웃던 베짱이는 날이 추워져 눈이 내리면 춥고 배고픈 몸을 끌고 따뜻한 개미집 문턱에서 구걸한다는 얘기. 그러나 이 얘기는 상상의 세계에서나 벌어지는 내용이다. 베짱이가 여름 내내 풀섶에서 울어대는 것은 사실 한가롭게 노래나 하며 즐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암컷들을 유혹해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는, 즉 번식을 위한 수컷들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겨울이 되기 전에 모든 베짱이들은 죽기 때문에 알을 낳아 땅 속 깊이 묻을 시간도 적다. 따라서 암컷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해 다른 수컷들보다 더 오랫동안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이 베짱이 수컷의 현실이다. 주변에 아무리 먹을 것이 많아도 수컷 베짱이는 먹고 쉴 여유가 없다. 삶의 현장은 누구에게나 이렇듯 숨막히게 돌아간다. |
농사일은 인간보다 선배 '개미와 베짱이' 얘기는 우리에게 어려운 때를 대비해 항상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윤리적인 교훈을 가르치지만, 동물행동학자인 필자는 이 얘기를 통해 또다른 교훈을 얻는다. 개미는 성충으로 겨울을 나는 동물이기 때문에 먹을 것이 풍부한 계절동안 그저 당장 먹고 마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즉 먹이가 부족한 계절을 대비해 여분의 식량을 수확하고 저장해야 한다. 자연계를 둘러보면 인간을 비롯해 개미, 흰개미, 벌 등의 사회성 곤충들을 제외하고 당장 먹을 분량 이외의 자원을 축적하는 동물들은 그리 흔하지 않다. 물론 겨울에도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먹을 것을 찾는 동물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겨울이 되기 전에 알을 낳고 죽는다. 그렇지 않으면 철새처럼 먹이가 풍부한 곳을 찾아 장정을 떠나기도 하고, 곰처럼 긴 겨울을 아예 잠으로 때우기도 한다. 그렇다면 개미는 어떻게 식량을 모아서 저장하는 것일까? 인간의 역사를 보면 본격적인 식량 축적은 농경시대에 접어들면서 시작됐을 것이다. 개미 사회에도 농사를 지어 식량을 비축하는 개미가 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인류가 처음으로 농경 생활을 시작하기 오래전이었다. 지금도 중남미의 열대림 속에서 나뭇잎을 물어다 그위에 버섯을 기르는 잎꾼개미(leafcutter ants: 산에서 나무를 해오는 woodcutter를 나뭇꾼이라 부르는데 맞춰 leafcutter를 잎꾼이라 부르자)는 지구에서 최초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동물로 알려졌다. 채소를 재배하는 농장 외에도 목장을 갖고 이른바 젖소를 키우는 개미도 있다. 진딧물과 개미의 관계가 그 좋은 예다. 그런가 하면 식물과 상호협정을 맺고 집과 식량을 공급받는 대신 온갖 초식동물로부터 식물을 보호하며 공생하는 개미도 있다. 개미는 이런 경제활동을 군락(colony)을 이뤄 수행한다. 흔히 개미 군락은 공장에 비유되는데, 인간사회의 기업과 마찬가지로 개미 기업도 고도로 발달한 분업제도를 도입해 이윤을 극대화한다. 그리고 얻은 이윤의 일부는 재투자해 기계설비를 보존하거나 새로운 공장을 짓는데 사용한다. 미시경제학의 한 분야인 산업경제학은 토지, 노동력, 자본 등을 투자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창출하는 기업의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기업이 당면한 문제는 바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유지하며 어떤 자원을 얼마나 투자해 얼마만큼의 상품을 만들어내는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산업경제학의 관점에서 볼 때, 토지는 개미사회의 터(territory)에 해당하고 노동력은 일개미의 수를 의미한다. 또 개미사회의 자본은 군락이 축적해 놓은 식량이다. 개미가 자원을 투자해 궁극적으로 생산하는 제품은 오로지 차세대 군락들을 이룩할 여왕개미와 숫개미들이다. 주변의 군락들보다 더 많은 여왕개미와 숫개미를 만들어내는 군락이, 보다 효율적으로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기업과 마찬가지로 더 큰 시장 점유율을 얻는다. |
| 작은 군락은 파산하기 일쑤,
비대한 군락은 비능률적이다. 중간크기가 가장 효율적인 경제구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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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혼인비행 시간을 잘못 잡는다거나 무슨 이유로든 혼례를 놓치게 되면 그간의 모든 노력은 완전히 헛수고가 된다. 이는 마치 1년 내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제작한 상품을 하나도 출고하지 못하는 격이다. 성수기에 맞춰 상품을 내놓아야 하는 것처럼 개미들의 혼인비행도 시간을 서로 정확하게 맞추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새 살림을 차린 여왕개미는 대부분 자그마한 단칸방 속에 스스로를 가둔 채 먹지도 않고 오로지 자식 키우기에 전념한다. 몸 속에 축적한 지방과 이젠 쓸모없게 된 날개 근육을 분해해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 첫 일개미들을 키운다. 이때 여왕개미는 제한된 자원이 동나기 전에 충분한 병력을 확보해야만 한다. 만일 제한된 시간 내에 외부로부터 식량을 구해올 수 있는 충분한 숫자의 일개미들을 만들지 못하면 그 왕국은 한번 제대로 서보지도 못하고 멸망한다. 여왕개미가 첫 일개미들을 키우는 과정은 경제학적으로 볼 떄 외부와 유통이 철저하게 단절된 이른바 '폐쇄경제' 체제에서 이뤄진다. 주어진 환경에서 정해진 자본으로 얼마나 빠른 시간에 효율적으로 제품을 생산하는지가 관건이다. |
| 개미들이 이룬 분업제도는
고도의 기업경영을 방불케 한다. 현재 많은 공장에서 채택된 컨베이어벨트 방식에 버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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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북이개미 사회에는 넓고
평평한 이마로 굴 입구를 틀어막고 평생 보초만 서는 일개미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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