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생물의 세계 수수께끼에 싸인 새들의 장거리 여행
이 글은 어린이를 위한 잡지인 "까치" 1993년 10월호(웅진출판사)에 실린 글입니다.

새들의 이동
수수께끼에 싸인 장거리 여행

7천 3백 미터의 높이로 날아 히말라야 상공을 넘나드는 새, 1년에 남극과 북극을 두 번이나 오가는 새 등 철새들의 이동 비밀을 밝혀 본다.


기러기들이 V자형으로 떼지어 날고 있다.

글/박시룡 (한국교원대 생물교육과 교수) 그림/유순혜

해마다 10월 말쯤이면 거대한 이동이 일어난다. 민족 대이동이 일어난다는 추석이나 설날도 아닌데 웬 이동일까? 장거리 뛰기에서 앞의 선수가 다음 선수에게 바통을 넘겨주듯, 레슬링에서 지친 선수가 손바닥을 치면 같은 팀의 선수와 교대를 하듯 이 땅에서 여름 철새와 겨울 철새가 교대를 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제비나 백로, 꾀꼬리 같은 여름 철새들은 날씨가 선선해지기 시작하는 10월이면 태국이나 필리핀 등으로 떠난다. 하지만 시베리아에서 번식을 하는 겨울 철새들은 여름 철새들이 춥다고 떠난 우리나라 땅이 시베리의 혹독한 겨울보다는 견디기 쉬워 해마다 찾아온다.



이동하기 전에 떼지어 모여 있는 제비들. (사진/손재식)

기온과 낮 길이의 변화는 생리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그래서 새들은 이동에 대한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기나긴 여행의 준비

봄에 날아와 우리나라에서 번식을 하는 여름 철새들은 이제 기나긴 여행을 위해 무리를 이룬다. 제비들도 전신주에 모인다. '강남 가는 제비들, 모두 모여라!' 이동하기 위한 준비 모임을 갖는 것이다. 이렇게 새들이 본능적으로 이동을 해야 하는 철임을 알게 해주는 것은 날씨의 변화이다. 기온의 변화와 낮 길이의 변화는 생리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그래서 새들은 이동에 대한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때, 새들은 모여 있는 자기 동료들의 무리에 자석처럼 끌리게 된다.

이동할 때에는 대개 무리의 가운데 경험이 많은 새가 앞장을 선다. 기러기는 V자형의 대형을 이루며 날아가는데, 이 대형은 바람의 저항을 가장 적게 받는 무리 비행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운이 좋다면 앞에서 날던 기러기가 지쳐 다른 기러기와 교대하여 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법

새들은 종류에 따라서 나는 높이도 각각 다르다. 작은 새들은 땅 위에서 불과 수십 미터쯤에서 날지만 몸집이 큰 새들의 경우에는 수천 미터의 높이에서 난다. 이렇게 높이 날게 되면 공기의 흐름에 몸을 실을 수가 있어 에너지 절약에 큰 도움이 된다.

독수리와 같은 대형 맹금류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스스로 날개짓을 하지 않고 따뜻한 상승 기류를 이용한다. 일단 적당한 높이에 올라가면 다시 서서히 하강 비행을 하여 또 다른 상승 기류를 타고 위로 올라가고. 물론 하강 비행에도 에너지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새들은 에너지를 절약하며 먼 거리를 이동한다.

◆ 공기의 흐름을 이용해서 날기 ◆

몸집이 큰 새들은 위로 오르는 공기의 흐름을 타고 원을 그리면서 하늘로 올라간다.

그렇다고 전혀 에너지가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이동을 위해 여름철에 에너지를 저장해야 한다. 많이 저장한다고 좋은 게 아니므로 이동 거리에 맞게 지방의 양을 모은다. 지방분은 새들의 비행 연료이다. 대개 이동 시기가 되면 자기 몸무게의 2배에 달하는 지방을 몸 속에 모아둔다. 그렇다고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새들은 때에 따라 중간 지점에서 먹이를 먹기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주로 낮에 이동하는 제비는 중간에 쉬다가 먹이를 먹고 다시 이동한다. 하지만 새에 따라서는 낮에는 먹이를 찾는데 시간을 보내고, 잔잔한 바람이 부는 밤에 이동하는 것들도 있다.



날개 끝의 깃털을 손가락처럼 펴고 나는 솔개.
제비의 경우도 우리나라에서 출발한 것 가운데 동남아시아에 도착하는 수는 겨우 절반밖에 안 된다.

위험한 여행

대부분의 새들은 이동 속도가 하루에 2백 ~ 6백 킬로미터에 달한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10일 동안 수백 킬로미터밖에 이동하지 못하는 새들도 있다. 이들은 주로 작은 새들로 대개가 중간 지점에서 먹이를 먹고 이동을 하는 종류들이다.

사실 이러한 여행은 그리 쉬운 게 아닌 것 같다. 봄이 되면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여름 철새인 백로나 황로 가운데에도 오는 도중 무리에서 뒤떨어지는 것들이 종종 있는데 대개가 아직 다 성숙하지 못한 것이거나 약한 것들로 우리나라 남쪽 무인도에 착륙한다. 이런 새들은 먹이와 마실 물이 충분치 못하여 죽기가 쉽다.


부리를 물 속에 박고 먹이를 찾는 큰기러기 무리.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 철새, 제비갈매기는 1년에 양극을 오가는 여행을 두 번 해야 하는데 1회 왕복 거리는 3만 킬로미터 이상이다. (그림/유순혜)

제비의 경우도 우리나라에서 출발한 것 가운데 제대로 동남아시아까지 도착하는 게 겨우 절반밖에 안 된다고 하니, 이동이 새들에게 얼마나 힘든가를 알 수 있다. 새들이 이동하면서 죽는 까닭은 자연 재해 때문인 경우가 많다. 살아남은 새들은 그 나름대로 자연의 재해를 줄이려는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여행 도중 폭풍이 몰아칠 것을 예측하고 도중에 항로를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날씨 변화 등을 예측할 수 없는 새들은 차츰 도태되고 만다. 그래서 자연의 세계는 강자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이다.


비둘기를 차에 태워 한참을 달리다 놓아 줘도 비둘기는 복잡한 골목길을 정확히 추적해 집을 찾는다.

◆ 새들의 이동 요인 5가지 ◆

1. 태양 나침반 2. 길 3. 냄새 4. 지구 자기장 5. 지형


여행의 이정표는 자기장?

그렇다면 새들은 과연 어떻게 길을 찾아가는 것일까? 이 물음은 오랫동안 과학자들에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명확한 해답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낮에 이동하는 새들은 주로 태양을 나침반으로 이용하고 밤에는 별이나 달의 위치를 보고 방향을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모든 게 풀리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흐린 날은 태양과 별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몇몇 새에게는 지구의 자장이 방향을 가르쳐 주는 이정표임이 증명되었다. 그럼, 새들이 길을 찾는 방법을 보다 자세히 알아 보기 위해 비둘기를 대상으로 했던 조사를 살펴보자.


비둘기 머리에 코일을 감고 전지를 이어 자장의 남북극이 서로 반대되게 해 주었다.

자기장에 관한 실험이다. 비둘기의 머리에 한 쌍의 코일을 씌운 다음 전류가 흐르게 하는데, 이때 전류가 흐르는 방향을 바꿔 자기장의 극도 바뀌게 한다. 이렇게 극의 방향을 바꿔버리면 비둘기는 둥지의 방향과는 반대쪽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태양 아래에서는 그 코일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

비둘기는 자주 다니는 길의 건물이나 산, 나무 등을 보고 자기 집을 찾아 간다. 집에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공중에서는 거의 일직선으로 자기 집을 향하지만 그 보다 먼 거리에서는 회전 비행을 하여 집 주변을 탐색한 뒤 집의 방향을 알아낸다. 그러나 분명히 비둘기는 태양과 자기장 그리고 건물이나 산, 길 따위의 도움 없이도 집을 찾을 수 있다. 비둘기를 차에 태운 다음 건물이 빽빽이 들어찬 골목길로 달리다가 한참 뒤에 놓아준다. 하지만 비둘기는 복잡한 골목길을 정확히 추적하여 집을 찾아온다. 바로 이 비둘기는 자기가 온 길의 직선 거리에다가 굽은 길을 기억해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가설도 모든 것을 다 설명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풀리지 않는 새들의 초감각 세계

최근의 연구에선 비둘기는 집을 찾을 때 냄새를 이용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집에 있는 비둘기는 바람에 의해 각 방향에서 불어오는 냄새를 익힌 다음 그 냄새를 기억해 둔다. 그리고 지나온 길의 냄새 표본을 수집하여 집을 찾아갈 때 단서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넓은 널판지로 막아 바람의 방향을 바꿔버리면 비둘기는 바람이 바뀐 방향으로 향할 뿐 집을 찾지 못한다. 하지만 태양이 있는 날에는 바뀐 뱡향으로 향했지만 흐린 날에는 집을 향해 찾아왔기 때문에 결국 이 냄새 가설도 완전한 것은 되지 못했다.

비둘기가 길을 찾는 것은 우리가 지도와 나침반을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하다. 사람들의 청각은 최저 20헤르쯔(Hz) 이하는 듣지 못하지만 비둘기는 0.1헤르츠까지 듣는다. 또 비둘기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자외선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미세한 진동도 느낄 수 있다.


넓은 널판지로 둥지 근처를 막아 바람의 방향을 바꿔버리면 비둘기는 집을 찾기 힘들어 한다. 왜냐하면 비둘기는 바람이 실어오는 각 방향의 냄새를 기억해 두고 집을 찾아오는 단서로 삼기 때문이다.

불가사의한 새들의 이동! 언젠가는 밝혀지겠지만 동물들의 초감각 세계는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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