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생물의 세계 추위에 맞서는 동물들
이 글은 어린이를 위한 잡지인 "까치" 1993년 11월호(웅진출판사)에 실린 글입니다.

놀라운 생물의 세계
추위에 맞서는 동물들

차가운 북풍이 몰아치는 겨울들판, 모든 것이 얼어붙은 이곳에도 생명은 살아 숨쉬고 있다. 온갖 지혜를 짜내며 겨울을 이겨내는 여러 동물을 만나보자.


눈 덮힌 대나무 숲 속의 고라니.

글/박시룡 (한국교원대 생물교육과 교수) 그림/최문정

요즘은 대부분 아파트처럼 난방이 잘 되는 곳에서 살기 때문에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특별한 준비가 필요 없다. 하지만 옛날에는 방문이나 창문에 문풍지를 바르고 온돌방을 덥힐 땔감을 모으면서 바쁘게 겨울날 준비를 하곤 했다. 사람들이 이렇듯 부지런히 겨울 준비를 했던 것처럼 숲 속의 동물들도 갖가지 방법으로 추위에 대비한다.

점점 날씨가 추워지고 숲 속에는 낙엽이 수북히 쌓이고 있다. 이제 곧 첫눈이 오고 땅도 꽁꽁 얼어 버릴 것이다. 이런 혹독한 추위에 동물들은 얼어붙은 들판에서 무얼 하며 지낼까? 그러나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동물에게도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지혜가 있으니까! 만일 준비가 모자라거나 허약한 놈들은 추운 겨울동안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지구 위에 동물이 처음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를 상상해 보라. 갑자기 추위가 닥쳤을 때 준비가 없었던 종류는 멸종돼 버렸을 것이다. 몇 번의 빙하기를 거치면서 추위를 견뎌 낸 종들만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종을 번성시켜 온 것이다.


겨울잠을 자는 박쥐. 날개로 온몸을 감싸고 있다. 박쥐가 겨울잠에 들어가면 영하의 온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몸이 아주 차가워진다.

방한복으로 갈아입고

많은 새들은 겨울이 오기 전 남쪽으로 이동할 준비를 한다. 물론 이동하지 않고 겨울을 나는 새들은 깃털은 부풀려서 따뜻한 공기를 그 속에 채우고는 든든한 방한복을 준비한다. 포유동물도 여름철의 짧은 털 대신 두꺼운 모피로 갈아입는다. 먹이도 겨울은 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열심히 먹이를 먹고 있는 다람쥐.

대부분의 동물들은 가을철에 가장 식욕이 왕성하다. 이때 동물들은 평소 몸무게의 두 배가 될 정도로 살이 찐다. 겨울에는 먹이를 구할 수 없으므로 이렇게 미리 먹이를 먹고 그것을 지방으로 바꾸어 몸 속에 저장하기 때문이다.

겨울 양식을 몸밖에 저장해 두는 동물들도 있다. 두더지는 벌레와 지렁이를 잡아 땅 속의 곳간에 모아 둔다. 청설모도 솔방울, 도토리, 밤 그리고 버섯까지 땅을 파고 묻어 둔다. 물론 자연스레 생긴 나무 구멍이나 새들의 빈 둥지도 저장 장소로 이용된다. 청설모는 이렇게 모아 둔 먹이를 찾기 쉽도록 특정한 나무를 정해 그 주변의 여러 장소에 숨겨 놓는다. 그러면 어떻게 먹이 장소를 모두 기억했다가 다시 찾아낼까? 청설모는 먹이를 묻을 때 기억해 둔 나무를 중심으로 20 ~ 30센티미터 떨어진 곳을 규칙적으로 파헤치는 방법을 쓴다. 청설모가 찾지 못해 땅속에 남은 몇몇 씨앗들은 이 작은 포유동물 덕분에 싹을 틔울 더할 수 없이 좋은 기회를 맞게 된다.

죽음보다 깊은 잠?

겨울잠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죽은 듯 잠을 자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겨울잠을 자는 동물에는 고슴도치, 박쥐 그리고 다람쥐가 있다. 겨울은 곤충을 먹고 사는 작은 포유동물에게는 아주 견디기 힘든 계절이다. 그래서 아예 움직이지 않고 에너지를 아끼며 겨울잠 자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늦가을이 되면 이들 동물은 먹이를 찾기 위해 다른 동물보다 더 열심히 움직인다. 그래서 11월이 끝나갈 무렵이면 목과 옆구리에는 두꺼운 지방층이 생겨난다. 이 지방층은 몸무게의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두꺼워진다.


곤충을 먹고 사는 작은 동물은 아예 움직이지 않고 에너지를 아끼며 겨울잠 자는 방법을 선택한다.

가을이 되면 박쥐는 그때까지 살던 곳을 떠나 겨울잠을 잘 다른 장소로 떠난다. 몇몇 종은 수 킬로미터 떨어진 가까운 곳으로 옮기지만, 수백 킬로미터를 여행하는 종류도 있다. 물론 여름에 사는 곳과 겨울잠을 자는 장소가 같은 경우도 있다. 겨울잠을 자는 곳은 온도 변화가 아주 적은 곳이어야 한다. 박쥐가 겨울잠에 들어가면 몸이 차츰 식어 가는데 영하의 온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차가워진다. 추위가 계속되는 겨울철에는 이런 상태가 6개월 동안이나 지속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런 깊은 잠이 한겨울 동안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가끔 한두 시간쯤 잠에서 깨어나 물을 마시거나 좀더 따뜻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에너지를 아끼며

여름철에는 1분에 4백 ~ 8백 번씩 뛰던 박쥐의 심장이 겨울잠을 잘 동안 20 ~ 30번 정도로 줄어든다. 가을에 모아 두었던 몸 속의 지방을 아주 천천히 사용하기 위해서다. 박쥐나 고슴도치처럼 체온이 항상 일정한 항온동물은 비상시에 물질 대사 작용을 촉진시켜 체온을 높일 수 있다. 그래서 아주 추운 겨울에도 얼어죽지 않는다. 그러나 개구리나 뱀은 주변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변온동물이기 때문에 날씨가 추워지면 몸도 함께 얼어, 그만 죽고 만다.

겨울잠에 빠져 있는 고슴도치의 몸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단식은 고슴도치가 겨울잠에 들어가는 첫 신호다. 그 다음은 뇌의 일부분인 간뇌가 체온이 내려가도록 조절한다. 이때 맥박은 1분 동안 188번에서 21번으로 내려간다. 호흡 횟수도 보통 때는 1분에 40 ~ 50번에서 2 ~ 5번으로 줄어든다. 또 핏속에도 변화가 일어나 혈당량(혈액 속에 녹아 있는 포도당의 양)이 거의 절반 수준으로 내려간다. 몸 안의 위 뒤에는 '이자'라는 기관이 있는데 이곳에서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통 때도 고슴도치에게 인슐린 주사를 놓으면 깊은 잠에 빠지곤 한다.


때까치과의 큰재개구마리는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에 뾰족한 나뭇가지에 먹이를 꽂아 저장해두는 습성이 있다.


겨울 들판에도 먹고 먹히는 싸움은 계속 된다. 멧새를 잡아 오랫만에 배불리 먹게 된 새매의 모습

두꺼워지는 몸 속의 지방

겨울철에 들어서면 고슴도치는 몸 속에 두꺼운 지방층이 생긴다. 특히 가시가 난 등쪽의 피부 밑 부분에 있는 갈색 지방층이 두꺼워진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머리는 작고 몸통만 엄청나게 커져 마치 커다란 전구처럼 보일 정도다. 이처럼 등에 쌓인 갈색 지방은 한겨울에 전기 담요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갈색 지방은 겨울잠을 자는 동안 한꺼번에 소비되지 않고 생존에 필요한 최소의 에너지만을 천천히 사용되는 것이다. 갈색 지방은 갓 태어난 포유동물에게도 발견된다. 물론 사람도 갓난아기 때는 이 갈색지방이 있다. 어린 새끼들은 어른처럼 근육을 움직여 체온이 내려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체온을 조절해주는 갈색 지방이 필요한 것이다.


● 다람쥐가 겨울잠에서 깨어날 때의 모습 ●
* 깨어나기까지 약 2시간이 걸린다.

곰의 겨울잠

가을이 끝날 무렵 살찐 곰은 식욕을 줄이기 위해 양치 식물 잎을 잘라먹는다. 그리고 일단 겨울잠 잘 구멍을 찾으면 그 구멍이 자기 것이라는 것을 다른 동물에게 알리기 위해 근처의 나무에 발톱 자국을 남긴다. 다음에는 곧바로 굴속에 들어가지 않고 1주일 동안이나 몸 말리기를 한다. 겨울잠을 자는 동안 몸이 젖어 있으면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곰은 고슴도치나 박쥐처럼 겨울잠을 자지는 않는다. 그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상태로 지내기 때문에 의식이나 감각은 평상시와 같다. 체온도 29도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또 몸집이 큰 곰은 몸 속에 저장한 영양분에 비해 기초대사율이 낮기 때문에 에너지를 절약할 필요가 없다.

곰의 새끼들은 주로 겨울에 태어난다. 새로 태어난 새끼들은 집쥐만큼 아주 작으며 몸무게도 5백 그램이 채 못된다. 새끼들은 어미 곁에 딱 붙어 포근하게 겨울을 보낸다.

물고기도 겨울잠을

겨울철 얼음 밑의 수온은 4도 정도가 된다. 물고기가 겨울을 나기에는 충분한 온도다. 대부분의 민물고기들은 얼음이 언 강물 바닥에서 겨울잠을 잔다. 강바닥 중에도 물살이 세지 않은 곳의 돌 밑이나 모래 속을 주로 찾는다. 잉어는 진흙 속에 몸을 숨긴다. 그래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청둥오리나 쇠물닭 같은 새들은 연못이 완전히 어는 것을 막기 위해 부지런히 원을 그리며 헤엄을 친다. 얼음이 두껍게 얼기 시작하면 부리로 힘차게 두드려서 얼음을 깨고 구멍을 만든다. 만약 얼음이 꽝꽝 얼어 버린다면 새들은 오랫동안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개구리, 뱀 그리고 달팽이

날씨가 추워지면 변온동물들은 몸이 차가워지고 근육은 딱딱하게 굳는다.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않은 채 숨도 거의 쉬지 않는다. 이 동물들은 가능한 한 얼어붙지 않을 곳을 찾아가 겨울을 보낸다. 만일 겨울잠을 자는 곳의 주변 온도가 0도 아래로 떨어지면 얼어죽기 때문이다. 청개구리는 겨울을 나기 위해 진흙 속에 들어가 숨는다. 뱀은 쥐가 파 놓은 땅속의 굴이나 바위 밑에 들어가 몸을 둘둘 감고 겨울을 보낸다. 달팽이도 땅속에 들어가 겨울을 보내지만 웬만한 추위에는 얼어죽지 않는다. 단단한 겉껍질과 분비물로 막아버린 구멍이 추위를 견디게 해 주기 때문이다.

봄이 오는 소리

봄이 오면 겨울잠을 자던 동물은 새 삶을 위해 다시 깨어난다. 봄의 햇볕이 굴속으로, 땅속으로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땅속에 웅크리고 있던 다람쥐가 차츰 몸을 펴기 시작하여 체온이 37도가 될 때까지는 거의 2시간이 걸린다. 몸집이 커다란 곰은 하루나 이틀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그리고 겨울잠에 들어가기 전에는 눈꺼풀이 덮일 만큼 살이 찌어 있던 것이 굴 밖으로 나올 때쯤이면 어른 내의를 입은 어린아이처럼 살이 쭉 빠진다.

천장에 매달린 박쥐도 바깥의 따뜻한 공기를 느끼면 날개의 힘을 주기 시작하며, 심장의 고동이 빨라진다. 그러나 무려 1시간 이상이나 걸리는 이 과정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박쥐는 몸 속에 저장해 둔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이때 모두 쓰면서 잠에서 깬다. 새 삶을 위해 자신에게 남아 있는 모든 것을 바치는 순간이다.


봄이 온 들판으로 나온 어린 새끼 곰. 이제부터 새 삶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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